“고구마 유기농 30년 붉은 황토밭서 연 20억원 보물 캐죠”
2012년 05월 30일 1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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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무안군은 바닷가와 맞닿은 곳이다. 무안! 이곳의 건강한 갯벌은 여름에 더위에 지쳐 쓰러진 소도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는 낙지의 고장이다. 또한 서울에서는 ‘망둥이’로 불리는 ‘운저리’를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낙지와 운저리가 바닷가에서 걷어올리는 고장 특산물이라고 하면 땅에서 나는 농산물로는 무안 붉은 황토에서 자라는 고구마와 양파가 유명하다. 특히 무안의 붉은 황토고구마는 전국에서 손꼽는 명품의 반열에 올라있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용정리와 오류리 일대에서 고구마를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김용주(59)·이정옥(58) 부부는 ‘행복한고구마’로 유명한 농민부부다. 한 때는 억척스럽게 농민운동을 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농촌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농민운동을 고집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두 부부가 유한회사 공동 대표로 삶의 반려자이자 꿈을 이뤄가는 동지로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하늘은 바닷가와 맞닿아서인지 약간 비릿한 갯냄새를 품고 있었다. 찻길을 살짝 벗어나 들어선 길은 농기계와 자동차가 서로 몸을 비비며 움직일 만큼의 공간밖에는 없었다. 굽이굽이 1~2km를 들어가자 붉은 황토밭 뒤로 바다가 유리창처럼 빛을 반사하며 맞이한다.
고구마 밭에서 만난 김용주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근처 나무그늘에 자리를 잡자마자 "왜 행복한 고구마냐고" 넌지시 물었다. “고구마는 보통 못생긴 것의 대명사였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못생긴 사람을 고구마라고 놀리잖아요. 그런데 고구마는 예쁜 거예요. 땅 속에서 줄기째 나오는 고구마를 보고 있으면 세상 어느 것 보다 예쁘게 보입니다.”
그는 고구마가 한없이 예쁘게 보인다면서 “행복한고구마는 정말 행복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거예요. 한 10년쯤 전에 고구마를 심어놓은 두둑을 단면으로 손으로 풀어헤쳤어요. 뿌리가 제대로 내렸는지 보려고요. 그런데 아내가 고구마가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얘기를 하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요. 우리가 키운 고구마가 땅속에서 우리를 보면서 행복하다고 외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브랜드를 ‘행복한 고구마’로 지었지요.”
이는 김 대표 부부가 실천하고 있는 ‘소통 농법’과도 맥이 닿아 있다. “농작물도 아이들처럼 보살피고 어루만지면서 자라는 겁니다.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밭에 나가 잘 잤는지, 지난밤에 비 피해는 없었는지 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좀 이상하겠지만 그런 마음으로 실천을 하다보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고 작물의 생육도 더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 대표가 이야기하는 농법에는 소통농법 만큼이나 생소한 게 또 있다.
“모래를 보면 반짝거리는 게 있잖아요. 그게 유리 등을 만드는 규사인데, 자세히 보면 그게 조금씩 자라는 게 있다는 거예요. 이 규사를 암소 뿔 안의 공간에 소똥과 함께 넣어 땅에 묻으면 우주의 기운을 받는다는 거예요. 암소 뿔이 우주의 안테나 역할을 해서 좋은 기운을 땅에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해마다 하지는 않지만 몇 번 해본 적이 있어요. 땅의 힘을 북돋운다는데 못할 것 없잖아요….”
김 대표는 이미 30년 전부터 유기농법을 고집스럽게 실천하는 유기농 명인이다. 그의 유기농 고집은 전국 유기농생산자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그런 그에게 왜 유기농을 고집하는 지 물었다. “농약은 이제 냄새를 맡을 수가 없어요. 농약을 하다가는 제가 먼저 죽을 판이에요. 이제 아예 농약에 대한 생각을 잊고 살아요. 농민들도 다 살자고 하는 농사인데 농약 때문에 죽을 수는 없잖아요.”
그의 말대로 농약은 우리 농촌의 큰 시름거리였다. 이제는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대한 의식이 생기면서 유기농이나 친환경 농업이 인기를 끌지만 한 때는 ‘국력 신장’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국가적으로 농약을 권장하기도 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 선배가 유기농을 고집하다가 국가 권력에 잡혀가는 일도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식량 증산이 최대 목표였는데 농약을 안치면 생산량이 줄고 결국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논리였지요.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상황이지만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다행히 그 얘기를 전해들은 육영수 여사의 배려도 풀려나긴 했다지만 그런 시절도 있었어요.”
김 대표 부부의 유기농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그가 말하는 유기농업은 유기농산물을 사먹는 소비자는 건강을 지키고 생산자는 도덕성과 양심에 가치를 둔 안전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해 정당한 가격을 받고 판매해야 하며 유기농업으로 살아나는 자연생태계는 국민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으로 공익적 자산이라는 논리다.
이를 위해 행복한 고구마에서는 지난 1985년부터 매년 고구마 재배포장에 새로운 황토로 넣고 멸치액젓에서 추출한 부산물에 쌀겨, 깻묵, 숯 등 천연자재만을 활용해 생산한 유기질퇴비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토양을 관리하며 천적 등을 이용해 병해충을 철저히 관리해 오고 있다. 이 독특한 농법이 인정돼 김 대표는 지난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입 시행한 ‘전남도 유기농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밤고구마 ‘수’ 호박고구마 ‘달수’‘달호’ 삼총사
올해 행복한 고구마에서 주력으로 삼은 품종은 밤고구마인 ‘수’와 호박고구마인 ‘달수’, ‘달호’다. 이미 여러 해 동안 선을 보인 ‘수’는 행복한고구마의 주력 품종이고, 일본 고구마 품종인 ‘하루까’를 재배한 ‘달수’는 그 맛이 너무 달고 맛있어 사람들이 ‘이렇게 달수가 있냐?’ 하고 묻는 데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달호’는 ‘달수’의 형제뻘 되는 고구마로 고구마를 이어주는 뿌리줄기가 튼실해 수확할 때 편리하고 그 모양새가 더 예쁜 모습을 하고 있다.
“올해는 이 세 가지 품종을 심었어요. 현경면 일대 6만평의 고구마 밭에 지금 한창 모종을 옮겨 심는 중입니다. 조금 일찍 옮겨 심은 고구마는 벌써 많이 자랐고요. 6월까지 나머지 고구마를 더 심어야겠지요.”
고구마는 이른 봄부터 하우스에서 고구마를 쪼개어 심고 싹을 트인 후, 어느 정도 자라면 밭에 옮겨 심는다. 이후 8~9월부터 수확을 하고 늦으면 10월까지 밭에 있다가 캐어져 저장고로 옮긴다. 이렇게 농사를 지은 고구마를 1년 내내 맛볼 수 있는 것은 토굴을 이용한 저장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구마는 상온에서도 얼어요. 바나나처럼 냉장고에 넣었다가는 모두 변해버리지요. 때문에 흙속에 있는 상태와 최대한 비슷하게 해줘야 됩니다. 보통 10월이면 남도지역도 차가워져서 고구마가 얼기 시작합니다. 이때는 빨리 수확해서 토굴에 저장해야 합니다.”
행복한고구마에서는 이를 위해 300t 정도를 저장할 수 있는 토굴을 만들어 저장고로 사용하고 있다. 이 저장고에서 흙고구마 상태로 보관하다가 주문량대로 포장해서 유통을 시킨다. 지금은 6만평에서 평당 7kg정도씩 생산해 연 420t을 생산한다. 이중 상품으로 유통되는 것은 약 300t정도라고 한다. 매출 규모로 따지면 연 20억원에 육박하는 부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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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매출은 다른 고구마보다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행복한고구마는 철저하게 유기농으로 생산된다. 또한 바닷가에 인접된 밭으로 고구마의 품질이 최고 상품이다. 보통 고구마는 동화작용에서 그 품질이 좌우되는데 무안의 기후는 고구마 농사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여름 한낮에는 섭씨 40도를 오르내리지만 바닷가인지라 저녁에는 20도 정도를 유지한다. 다른 지역보다 일교차가 심한 것이 고구마의 맛을 더 올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실려 오는 각종 미네랄과 무기질은 무안만의 특별한 혜택이다. 때문에 행복한고구마는 쪼개어 보면 하얀 진물 같은 게 유난히 많다. 결국 이 물질이 행복한고구마의 당도와 맛을 지닌 비결이다. 지금은 유기농명인으로 인정받고 남부럽지 않은 부농의 반열에 올랐지만 김 대표 부부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김 대표 부부는 처음부터 고구마를 한 것은 아니었다. 마늘도 심어보고 이것저것 여러 종류의 작목을 놓고 고민하기도 했다.
“고구마를 시작했는데 포도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외국에 갔다가 알게 된 품종인데 포도 당도도 높고 포도 열매가 단단한 종이었습니다. 포도를 까도 알맹이에서 과즙이 흐르지 않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포도 농사를 한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시장조사를 했지요. 그랬던 포도 전문가들이 제가 하는 고구마가 훨씬 더 좋다는 것이에요. 고구마는 일 년 내내 수요가 있지만 당시 포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가공시장도 별로 없는 상태였고요.”
김 대표는 각자 인연처럼 자신에게 맞는 작목이 있다고 얘기한다. “작물도 사람들의 인연처럼 자신과 맞는 품종이 있는 것 같아요. 때문에 어떤 품목이 좋다 나쁘다 평하기보다는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는 품목인가, 정말 열심히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품목인가를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공부하는 농사꾼·해외농장 설립 더큰 꿈
그는 농부가 농사만 잘 지으면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얘기한다. 이제 경영과 유통은 물론 재무지식까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늦게 김용주 대표는 농가대학 등에서 공부를 늦깎이로 마쳤다. 아내 이정옥 대표도 현재 늦깎이 대학생이다. 이 여사는 현재 서울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가장 바쁜 농번기에도 매주 먼 서울로 통학을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많다. 그 중 하나가 해외농장 설립에 대한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고구마 농사를 해보려고 200평 정도의 밭에서 실험을 했어요. 캄보디아와 우리나라는 기후상 한두 달의 차이가 있거든요. 우리는 4~5월에 고구마를 옮겨 심지만 그곳에서는 3~4월에 할 수 있어요. 물론 수확도 우리보다 빨리 할 수 있고요. 고구마 농사에서 인력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게 모종 옮겨 심는 때와 수확기인데 숙달된 인력들이 한국과 캄보디아를 오가며 농사를 짓는다면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지요.”
하지만 그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캄보디아에서는 농약을 하지 않자 개미들이 고구마에 집을 짓고 사는 바람에 상품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농약을 치면서 농사를 지으면 수확이 가능하겠지만 유기농을 하는 그에게는 또 다른 숙제로 남은 것이다.
“캄보디아나 필리핀 등에서 다시 시도하려고 합니다. 숙소 문제나 제반 여건들이 지자체나 정부에서 나서서 도움을 줘야 할 것도 있지만요. 형태는 현지법인을 만들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요. 현지 주민에게 자연스럽게 기술 이전을 하면서 우리도 해외 농지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연구 가치가 있습니다.”
최근 김 대표는 ‘한·중 FTA’도 걱정거리 중 하나라고 토로한다. “아직 고구마는 국가 간 협약을 해야 하는 품목이에요. 유럽처럼 고구마 농사를 짓지 않는 국가에는 수출을 할 수 있지만 서로 고구마 농사를 짓는 나라끼리는 무역을 하지 않습니다. 흙고구마가 풍토병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한·중 FTA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미지수입니다. 중국은 전 세계 고구마 생산량의 80% 가량을 생산하는 나라지요. 혹시나 국가 간 협약에서 고구마가 빗장이 풀리거나 한다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리 앞서 예단할 수는 없지만 워낙 농업의 입장이 대변되지 않는 구조에서는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입니다.”
김 대표는 국가 간의 협상에 있어 국내 농업의 입장이 잘 고려되지 않는 부분을 지적했다. 그동안 정부에서 다른 산업에 대한 배려보다 농업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는 것도 꼬집었다. 고구마뿐만 아니라 한·중 FTA 협상에서는 우리 농업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깊게 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한상오 기자 hanso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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